바위가 속삭인 6,000년의 이야기: 반구천 암각화, 마침내 세계의 유산이 되다

 

바위가 속삭인 6,000년의 이야기: 반구천 암각화, 마침내 세계의 유산이 되다

바위가 속삭인 6,000년의 이야기: 반구천 암각화, 마침내 세계의 유산이 되다

서문: 시간을 거슬러 온 메시지

2025년 7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낭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는 2010년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린 지 15년 만에 이룬 쾌거이자, 대한민국 17번째 세계유산의 탄생입니다. 하지만 이 소식은 단순히 목록에 유산 하나가 추가되었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마치 까마득한 시간의 저편에서 날아온 편지를 마침내 인류가 함께 열어본 것과 같은 감동을 줍니다. 수천 년 전, 한반도 동남쪽의 어느 강가에서 누군가 바위에 새겨 넣었던 간절한 염원과 생생한 삶의 기록이, 21세기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간의 창의성이 빚어낸 걸작

반구천 암각화가 세계의 인정을 받은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지닌 압도적인 예술성 때문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를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만들어낸 걸작"이라 평가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오래된 그림이라는 고고학적 가치를 넘어, 인류 보편의 미적 감각을 자극하는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공인한 것입니다.

바다를 품은 바위, 고래들의 군무

특히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창성을 자랑합니다. 새끼를 등에 업고 유영하는 귀신고래, 거대한 몸을 물 위로 힘껏 들어 올리는 혹등고래,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북방긴수염고래까지. 선사 시대의 예술가는 놀라운 관찰력으로 각 고래의 생태적 특징을 정확히 포착해 바위 위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암각화 중 하나로, 당시 사람들의 해양 활동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창입니다.

선사 시대의 예술혼

암각화는 단순히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넘어섭니다. 역동적인 구도, 사실적인 묘사, 그리고 여러 그림을 한 화면에 조화롭게 배치한 구성 능력은 현대의 예술가마저 감탄하게 합니다. 작살을 맞은 멧돼지의 고통스러운 몸짓, 울타리 안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사슴의 모습, 춤을 추는 듯한 사람의 형상까지. 바위는 선사 시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거대한 캔버스였던 셈입니다.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준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평가

6,000년의 시간을 새긴 독보적인 증거

반구천 암각화의 또 다른 위대함은 그것이 단 하나의 시대가 아닌, 여러 시대가 겹겹이 쌓인 '타임라인' 그 자체라는 점에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고래잡이부터 청동기 시대의 기하학적 무늬, 그리고 삼국시대 신라인들의 흔적까지, 약 6,000년에 걸친 암각 제작 전통이 한 장소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이거나 특출한 증거"라는 유네스코 등재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시킵니다.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에는 신라 법흥왕의 동생과 왕비, 그리고 화랑들이 다녀간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나무위키 자료에 따르면, 이 명문들은 『삼국사기』와 같은 문헌 기록과 교차 검증이 가능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선사 시대 사람들이 신성시했던 바위가 역사 시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중요한 장소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고 축적된 흔적은 반구천 암각화를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유산으로 만듭니다.

등재, 그리고 남겨진 숙제: 침수와의 전쟁

화려한 등재 소식 뒤에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바로 수십 년간 지속된 '침수' 문제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암각화가 발견(1971년)되기 6년 전인 1965년, 하류에 사연댐이 건설되면서 비가 많이 오면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물에 잠겼다 드러나기를 반복하며 암석 표면이 약해지는 등 훼손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다행히 최근 정부와 울산시가 협력하여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하는 등 근본적인 보존 대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위원회 역시 등재 결정과 함께 "사연댐 공사의 진척 사항을 세계유산센터에 보고할 것"을 권고하며, 이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했습니다. 세계유산 등재는 이 소중한 유산을 미래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우리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세계유산 등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위대한 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그 가치를 세계인과 함께 나눌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무분별한 관광 개발은 오히려 유산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관람을 최소화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실감형 콘텐츠나 '반구천세계암각화센터'를 통한 간접 체험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반구천의 바위들은 이제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천 년을 견뎌 들려준 이야기를, 너희는 다음 수천 년으로 이어갈 준비가 되었는가?" 라고 말입니다.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공업도시 울산을 넘어, 선사 문화의 보고이자 세계적인 역사문화도시로 거듭날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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