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는 없고, 정쟁만 남았다: 과기정통부 장관 청문회 파행,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2025년 7월 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장. 대한민국의 인공지능(AI) 미래를 이끌어갈 수장 후보자가 앉아있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그를 비껴갔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고성과 삿대질, 그리고 '독재 OUT'이라는 날 선 구호가 적힌 피켓이었습니다. 미래를 논해야 할 자리에서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는 정치의 민낯,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그렇게 시작도 전에 멈춰 섰습니다.
파행의 서막: '최민희 독재 OUT' 피켓
사건의 발단은 단순했습니다.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각자의 노트북에 "최민희 독재 OUT! 이재명은 협치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붙이고 나타난 것입니다. 이는 최근 여당 주도로 과방위를 통과한 '방송3법' 개정안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습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 처리에 대해 야당은 '언론장악'이라며 강하게 반발해왔고, 그 불만이 장관 후보자 청문회장에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회의 진행 방해를 이유로 피켓 제거를 요구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를 거부하자 국회법에 따라 산회를 선포했습니다. 이후 여야는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며 힘겨루기를 이어갔고, 국회 경호인력까지 동원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오전 내내 청문회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청문회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였나?
이날 청문회장의 풍경은 "이것이 과연 배경훈 후보자의 청문회인가, 아니면 최민희 위원장의 청문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파행을 거듭하는 상황을 비판하며, 청문회가 후보자 검증이라는 본질을 잃고 여야의 정치적 대리전으로 변질되었음을 꼬집었습니다. 후보자는 정쟁의 무대 위에 소품처럼 앉아 있었을 뿐, 그 누구도 그의 정책과 비전에 대해 진지하게 묻지 않았습니다.
미래 기술을 다루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뽑는 자리에서, 가장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갈등이 표출된 것은 역설적입니다. AI와 우주 시대를 논해야 할 시간에, 정치권은 여전히 '피켓'과 '고성'이라는 낡은 문법에 갇혀 있었습니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 실종된 정책 검증
이번 파행으로 인해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의 중요한 방향을 점검할 기회가 허공으로 날아갔습니다. LG AI연구원장 출신인 배경훈 후보자는 AI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 그가 제시할 정책 방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AI 전문가에게 던져졌어야 할 질문들
후보자는 청문회에 앞서 AI 산업 진흥을 위해 'AI 기본법'의 일부 규제 조항을 유예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규제보다 진흥'에 방점을 찍으며, 2~3년 내에 '소버린 AI(자주적 인공지능)'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습니다. 이는 산업계의 환영을 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AI 기술의 오남용과 윤리 문제에 대한 우려를 낳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진흥과 규제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그의 철학을 검증할 절호의 기회는 정쟁의 소음 속에 묻혔습니다.
개인 신상 논란, 검증의 기회는 어디로
정책뿐만이 아닙니다. 야당은 배 후보자의 전문연구요원 시절 병역 부실 복무 의혹 등을 제기하며 송곳 검증을 예고했습니다. 후보자는 "병무청의 승인을 받았다"며 의혹을 해명했지만, 국민을 대신해 국회가 철저히 사실관계를 따지고 공직자로서의 자격을 판단할 책임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의혹은 해소되지 않은 채 논란으로만 남았고, 검증은 실종되었습니다.
파행이 남긴 것: 불신과 공백의 그림자
결국 배경훈 후보자 청문회 파행은 정치권에 대한 깊은 불신과 함께 과학기술 분야의 리더십 공백이라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컨트롤 타워의 부재는 국가 경쟁력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국민들은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을 보고 싶었지만, 그들이 목격한 것은 오직 정치인들의 싸움뿐이었습니다.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논의가 정치적 이해득실 앞에 번번이 좌초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싸움은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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