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실적 발표에도 투자자들이 등을 돌린 이유, AI라는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애플은 길을 잃었나?
애플이 파티를 열었다. 2025년 3분기, 시장의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는 화려한 성적표를 들고서 말이다. 매출과 이익, 주력 제품인 아이폰 판매량까지 모든 숫자가 '역대급'이라는 수식어를 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파티장의 분위기는 싸늘했고, 월스트리트라는 가장 중요한 손님은 박수 대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것은 단순한 변덕일까, 아니면 기술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거대한 전환점에서 '혁신의 아이콘'이 방향을 잃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일까?
1. 축포를 터뜨린 실적, 그러나 공허한 메아리
숫자만 놓고 보면 애플의 3분기는 완벽한 승리였다. 분기 매출 940억 달러, 주당 순이익(EPS) 1.57달러를 기록하며 월가의 비관적인 전망을 비웃었다. 애플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 12% 증가한 수치로, 달러 기준으로 2021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성장이다. 투자자들이 안도할 법도 한데,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아이폰의 화려한 귀환과 중국 시장의 반등
이번 실적의 일등 공신은 단연 아이폰이었다. 아이폰 매출은 446억 달러에 육박하며 전년 대비 13%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보였다. Business Insider의 분석처럼 이는 시장 예상치를 크게 상회하는 결과로, 애플의 견고한 생태계와 브랜드 충성도가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했다. 더 고무적인 소식은 그동안 애플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중국 시장에서 들려왔다. 두 분기 연속 하락세를 보이던 중화권 매출이 4% 반등하며 153억 달러를 기록한 것이다. 팀 쿡 CEO는 일부 제품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뤄낸 반등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AI, 뒤늦게 뛰어든 거인의 고독한 추격전
이처럼 눈부신 실적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른 곳이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애플은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AI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팀 쿡은 "AI는 우리 시대 가장 심오한 기술 중 하나"라며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TechCrunch 보도에 따르면, 그는 AI를 모든 기기와 플랫폼, 회사 전반에 접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투자하겠다"는 약속과 M&A라는 카드
애플의 AI 전략은 '추격'에 가깝다. 이미 시장을 선도하는 경쟁자들을 따라잡기 위해 M&A(인수합병)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팀 쿡은 "로드맵을 가속하는 M&A에 열려 있다"고 말하며, 올해 이미 7개의 회사를 인수했음을 밝혔다. 최근 AI 검색 엔진 '퍼플렉시티(Perplexity)' 인수 검토설이 흘러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애플이 자체 개발만 고집하는 대신, 외부 수혈을 통해서라도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절박함의 표현으로 읽힌다.
시장의 눈높이: 단순 참여가 아닌 '지배'를 원한다
문제는 시장이 애플에게 기대하는 것이 단순한 'AI 기능 추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애플이 과거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시장을 재정의했던 것처럼, AI 시대에서도 게임의 룰을 바꾸는 '지배자'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지난 6월 WWDC에서 공개된 '애플 인텔리전스'는 기존 기능의 개선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으며 실망감을 안겼다. CNBC가 지적했듯, 애플의 AI 전략은 여전히 불완전하며, 이것이 주가에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냉정한 시선: 왜 애플만 소외되는가?
애플 주가는 올해 들어 15% 이상 하락하며 ';매그니피센트 7' 중 테슬라 다음으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기술주 전반이 AI를 동력 삼아 급등하는 동안, 애플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이 현상은 현재 시장이 기업을 평가하는 척도가 '수익성'에서 'AI 잠재력'으로 이동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AI로 갈린 빅테크의 희비
애플의 실적 발표 바로 전날,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는 AI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성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하며 주가가 급등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와 AI 부문의 강세로, 메타는 AI 기반 광고 수익 증대로 시장의 환호를 받았다. 반면, 같은 날 실적을 발표한 아마존은 클라우드 부문(AWS) 성장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주가가 7% 가까이 하락했다. 이는 AI 인프라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애플 역시 이와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애플은 혁신 부재로 인해 앞으로 성장세가 회의적이다. AI 대응 실패가 주가 반등을 가로막는 핵심 요인이다."
혁신의 부재, 성장의 한계에 대한 경고
결국 투자자들의 불안은 '성장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으로 귀결된다. 아이폰이라는 강력한 캐시카우가 있지만, 그 다음은 무엇인가? AI라는 거대한 물결이 모든 산업을 집어삼키고 있는 지금, 애플이 보여주는 모습은 변화를 이끄는 '퍼스트 무버'가 아닌, 마지못해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에 가깝다. 이는 애플의 DNA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며,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이다.
결론: 기로에 선 제국, 다음 챕터는 무엇인가?
애플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기업 중 하나이며, 수십억 명의 충성 고객을 보유한 막강한 제국이다. 이번 3분기 실적은 그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하지만 시장은 과거의 영광이 아닌 미래의 비전을 요구하고 있다. 애플이 던진 'AI 투자 강화'와 'M&A'라는 약속은 이 요구에 대한 뒤늦은 답변이다.
이제 공은 다시 애플에게 넘어왔다. 과연 애플은 막대한 현금과 자원을 활용해 AI 경쟁의 판도를 뒤흔들 '한 방'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니면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는 과거의 거인으로 남게 될까? 전 세계가 애플의 다음 행보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번 실적 발표가 축제의 끝이 아니라, 애플의 미래를 결정할 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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