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이 집어삼킨 공동체: 광명 아파트 화재, 평범한 일상 아래 숨겨진 비극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익숙하게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섭니다.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향하는 그 짧은 순간은 바깥세상의 소음과 단절되고 안온한 보금자리로 들어서는 첫 관문입니다. 하지만 2025년 7월 17일 밤,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바로 그 평범한 공간이 끔찍한 비극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방화도, 전기차 폭발도 아니었습니다. 불길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곳, 1층 필로티 주차장 천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던 위협, 천장에서 시작된 불씨
화재 초기, 사람들은 저마다 원인을 추측했습니다. 잇따른 차량 폭발음에 혹자는 방화를, 혹자는 전기차 배터리 문제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경찰과 소방당국의 합동 감식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CCTV 영상은 화염이 주차된 차량이 아닌, 천장 쪽에서 먼저 시작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결정적 단서는 '단락흔(短絡痕)'이었습니다. 소방당국은 주차장 천장 케이블 트레이에서 전선이 합선되며 생긴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천장 내부의 낡거나 손상된 전선에서 일어난 전기적 결함이 화재의 최초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집 안의 콘센트나 가전제품의 위험성은 인지하지만, 건물 공용부의 천장 속 전선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번 화재는 우리의 안전 불감증이 미치지 못하는 어둡고 은밀한 곳에 도사린 위험을 수면 위로 드러냈습니다.
편리함의 역설, 필로티 구조는 왜 화를 키웠나
필로티 구조는 이제 도심 속 주거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1층을 기둥으로만 받쳐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은 부족한 대지 위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한 건축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은 화재 앞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습니다.
'굴뚝'이 되어버린 주차장
전문가들은 필로티 구조가 화재 확산을 가속하는 '결정적 요소'라고 지적합니다. 사방이 개방된 구조는 신선한 공기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동시에, 불길과 유독가스를 상층부로 빠르게 밀어 올리는 거대한 '굴뚝 효과(Stack Effect)'를 만들어냅니다. 광명 아파트 화재 당시, 1층에서 시작된 불이 순식간에 10층 건물 전체를 집어삼킬 듯 번진 것은 바로 이 구조적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주민들이 대피할 시간을 벌기는커녕, 유일한 탈출구인 계단마저 순식간에 검은 연기로 가득 차면서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화약고가 된 일상의 공간
필로티 주차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화약고'였습니다. 주차된 차량 25대는 단순한 쇳덩이가 아니었습니다. 차량의 연료, 타이어, 플라스틱 내장재는 천장에서 시작된 불이 옮겨붙자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화세를 키우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목격자들이 "폭탄 터지는 소리가 백 번은 난 것 같다"고 증언할 정도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천장 마감재로 불에 잘 타는 '아이소핑크' 같은 가연성 단열재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불길은 날개를 단 듯 번져나갔습니다. 편리한 주차 공간은 순식간에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맹렬한 화염과 유독가스의 생산 공장으로 돌변했습니다.
법의 사각지대, 2014년에 멈춘 안전시계
이토록 큰 피해를 낳은 배경에는 '제도의 허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합동 감식 결과, 화재가 시작된 1층 지상 주차장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해당 아파트는 2014년에 사용 승인을 받았는데, 당시 소방법은 11층 이상 건물부터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기 때문입니다. 6층 이상 건물까지 의무가 확대된 것은 2018년으로, 이 아파트는 법의 소급 적용을 받지 않았습니다.
가연성 마감재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는 필로티 구조에 불연·준불연 마감재 사용이 의무화되었지만, 이 규정이 강화된 것은 2019년 이후입니다. 결국 이 아파트는 준공 당시의 법규는 모두 지켰지만, 강화된 현재의 안전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합법적인 위험'을 안고 있었던 셈입니다. 사망 3명을 포함해 총 65명의 사상자를 낸 이 비극은, 법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많은 기존 건축물들이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잿더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광명의 아파트 화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곳의 전기 설비, 편리함 뒤에 숨은 구조적 취약성, 그리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낡은 안전 규제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사회적 재난입니다. 한 가족이 구조되기까지 화장실에서 젖은 수건으로 입을 막고 50분을 버텨야 했던 처절한 시간은 이 재난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공간을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필로티 천장은 안전한가? 우리 동네의 낡은 건물들은 현재의 안전 기준을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가? 검게 그을린 아파트 외벽은 우리 사회 전체에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비극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기존 건축물에 대한 전면적인 안전 점검과 제도 개선을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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