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사원, 인간의 전쟁: 캄보디아-태국, 끝나지 않는 갈등의 연대기

신들의 사원, 인간의 전쟁: 캄보디아-태국, 끝나지 않는 갈등의 연대기

 

신들의 사원, 인간의 전쟁: 캄보디아-태국, 끝나지 않는 갈등의 연대기

작성일: 2025년 7월 24일

2025년 7월 24일, 세계의 이목이 동남아시아의 한 국경으로 쏠렸습니다. 태국의 F-16 전투기가 캄보디아 영토 내 군사 목표물을 공습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CNN 등 주요 외신은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며, 수십 년간 잠복해 있던 양국의 갈등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고대 사원의 고요함을 깨뜨린 굉음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100년 넘게 묵은 역사적 상처와 민족주의, 그리고 정치적 야망이 뒤엉켜 터져 나온 비명이었습니다. 이 글은 신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땅이 어떻게 인간의 전쟁터가 되었는지, 그 길고 복잡한 역사를 따라가 봅니다.

역사적 뿌리: 식민주의가 남긴 상처

캄보디아와 태국의 갈등은 대부분의 국경 분쟁이 그렇듯, 제국주의 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19세기 말,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며 캄보디아를 보호령으로 삼았습니다. 당시 독립을 유지하고 있던 시암(태국의 옛 이름)은 서구 열강의 압박 속에서 위태로운 외교를 펼쳐야 했습니다.

프랑스의 지도, 분쟁의 씨앗

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1904년과 1907년 프랑스와 시암이 체결한 국경 조약과 그에 따라 프랑스가 제작한 지도입니다. 스탠퍼드 대학 FSI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조약은 당렉 산맥의 자연적인 분수계(分水界, watershed line)를 국경으로 삼는다고 명시했습니다. 이 원칙대로라면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의 대부분은 태국 영토에 속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1907년 프랑스 측량팀이 제작한 지도는 이 원칙에서 벗어나 사원 전체가 캄보디아에 속하도록 그려졌습니다.

캄보디아는 이 지도가 국경의 법적 근거라고 주장합니다. 태국(당시 시암)이 수십 년간 지도에 대해 명확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이는 지도의 효력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행위(묵인, acquiescence)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 논리를 받아들여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이 캄보디아의 주권 하에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유엔 뉴스는 이 판결이 캄보디아 주장의 핵심 근거가 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태국의 입장: "빼앗긴 영토"라는 인식

반면 태국은 이 지도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당시 시암 측 국경 위원들이 프랑스가 만든 지도에 공식적으로 동의한 적이 없으며, 지도가 명백한 조약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입니다. AP통신은 태국이 1907년 지도가 부정확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고 전합니다. 태국 국민들 사이에서는 프랑스 식민주의에 의해 영토를 부당하게 빼앗겼다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은 그 상징적인 장소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감정은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국내 정치를 자극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어왔습니다.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분쟁: 2008-2011년, 갈등의 정점

수십 년간 잠잠했던 갈등은 2008년 캄보디아가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단독 등재를 추진하면서 폭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문화유산 등재를 넘어, 영토 주권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으려는 시도로 비쳤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 등재가 불러온 비극

태국은 사원 자체의 소유권은 1962년 ICJ 판결에 따라 인정하면서도, 사원 주변의 미확정된 부지가 자국 영토라며 캄보디아의 단독 등재에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FSI 자료에 따르면, 이 문제는 당시 태국의 극심한 국내 정치 갈등과 맞물려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태국의 민족주의 시위대(옐로 셔츠)는 정부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며 비판했고, 양국의 민족 감정은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하나의 사원이 두 나라의 자존심이 되자, 평화는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목록은 영광의 상징이 아닌, 분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양국의 엇갈린 주장과 군사적 충돌

2008년 7월 유네스코가 캄보디아의 신청을 승인하자, 양국은 국경에 군대를 증파하며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이후 2011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무력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양측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최소 41명이 사망하고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양국은 서로 상대방이 먼저 공격했다며 책임을 떠넘겼고, 국경 지역은 전쟁터로 변했습니다. 이 갈등은 2013년 ICJ가 사원 주변 지역 전체가 캄보디아 주권 하에 있다고 재확인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갈등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습니다.

2025년, 다시 타오르는 불씨: 현재 상황 분석

2024년 2월, 양국 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며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25년 5월 국경 교전을 시작으로 긴장은 다시 고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뢰 폭발에서 공습까지: 긴장의 급격한 고조

최근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7월에 발생한 연쇄 지뢰 폭발 사건이었습니다. 태국 병사 여러 명이 부상당하자 태국은 캄보디아가 의도적으로 지뢰를 매설했다며 비난했습니다. The Nation Thailand은 이 사건으로 한 병사가 다리를 잃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양국은 대사를 추방하고 외교 관계를 격하했으며, 국경을 폐쇄하는 등 강경 조치를 주고받았습니다. 마침내 7월 24일, 태국은 전투기를 동원한 공습을 감행하며 사태는 전면적인 군사 충돌 직전까지 치달았습니다. 가디언(The Guardian)은 이 공습으로 민간인 사상자까지 발생했다고 전하며, 상황의 심각성을 알렸습니다.

외교 단절과 경제 보복

군사적 충돌과 함께 외교적, 경제적 보복 조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양국은 서로의 대사를 추방하며 외교 관계를 최저 수준으로 낮췄습니다. VietnamPlus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외교 관계를 대리대사급으로 격하했습니다. 또한 캄보디아는 태국산 연료 수입 중단을 선언했고, 태국은 국경 검문소를 폐쇄하며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국제위기감시기구(Crisis Group)는 국경 무역 규모가 2024년 50억 달러에 달했던 만큼, 이러한 조치가 양국 경제, 특히 국경 지역 주민들의 생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복잡한 국내 정치와 리더십

이번 갈등의 배경에는 양국의 복잡한 국내 정치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태국에서는 펫통탄 친나왓 총리가 훈센 캄보디아 상원의장과의 통화 내용이 유출된 후 직무가 정지되는 등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CNN은 이 사건이 펫통탄 총리가 자국 군을 비판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민족주의자들의 분노를 샀다고 보도했습니다. 캄보디아의 실권자인 훈센은 이 상황을 이용해 태국 정부를 압박하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양국 지도자들은 갈등을 국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이용하고 있어, 평화적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갈등의 영향: 관광 산업과 한국에 미치는 파장

앙코르와트와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두 나라는 전 세계 여행객들이 사랑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분쟁은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산업인 관광업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위험' 딱지가 붙은 여행지

가장 큰 타격은 육로 국경 폐쇄입니다. 태국을 거쳐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로 향하는 것은 배낭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루트였지만, 현재는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Euronews는 태국 정부가 관광객의 육로 국경 통과를 금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캄보디아 관광 산업에 치명적입니다. Cambodianess에 따르면 캄보디아를 찾는 전체 관광객의 절반 가까이가 육로를 통해 입국하기 때문입니다.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불안정한 분쟁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고착되어 양국 관광 산업 전체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한국 여행객을 위한 조언

현재 한국에서 캄보디아나 태국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몇 가지 사항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 항공편 운항: 2025년 7월 24일 현재, 방콕, 프놈펜, 씨엠립 등 주요 도시 간 항공편은 대부분 정상 운항 중입니다. Khmer Times는 국경 폐쇄에도 불구하고 항공편은 중단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인천에서 씨엠립으로 가는 직항편도 운항되고 있습니다.
  • 여행 경보 확인: 여행 전 외교부의 여행경보단계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국경 지역인 프레아 비헤아르, 수린, 시사껫 주 등은 방문을 절대 삼가야 합니다. 미국, 영국 등 여러 국가가 이미 자국민에게 여행 주의보를 발령했습니다. Travel and Tour World 보도
  • 육로 이동 계획 금지: 태국과 캄보디아 간 육로 이동은 현재 불가능하므로, 두 나라를 함께 여행할 계획이라면 반드시 항공편을 이용해야 합니다.
  • 현지 정보 주시: 현지 뉴스 및 대사관 공지를 통해 상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 연락망을 확보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결론: 평화는 어디에 있는가?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은 ';성스러운 절벽의 사원'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과 달리, 사원을 둘러싼 땅은 성스러움 대신 증오와 갈등으로 얼룩졌습니다. 식민주의가 그은 임의의 선 하나가 후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정치 지도자들은 평화와 공존 대신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캄보디아는 국제법을 통한 해결을, 태국은 양자 협상을 통한 해결을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아세안(ASEAN) 등 역내 기구의 중재 노력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Kiripost는 양측의 요청이 없으면 아세안이 개입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적합니다. 결국 해묵은 갈등을 풀 열쇠는 과거의 상처를 직시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는 양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결단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신들의 사원이 다시 평화를 되찾고, 인간의 전쟁이 멈추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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