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정의를 실현한 의인, 박기서 선생을 기리며

민족의 정의를 실현한 의인, 박기서 선생을 기리며

 

민족의 정의를 실현한 의인, 박기서 선생을 기리며

박기서 선생과 그가 안두희를 처단할 때 사용한 '정의봉'

2025년 7월 10일, 한국 현대사에서 잊지 못할 한 인물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바로 1996년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 선생입니다. 향년 77세의 나이로 별세한 그는 단순한 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의를 실현한 의인으로 역사에 기억될 것입니다.

의로운 분노에서 시작된 역사적 결단

1948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박기서 선생은 평범한 시내버스 운전기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백범일지를 수차례 읽으며 독립운동가로서의 김구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마음에 새겨온 그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된 뒤, 이듬해 남은 형량도 모두 면제되며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한 박기서 선생은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청소부 심정으로 처단했습니다"

박기서 선생의 생전 모습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 30분, 박기서 선생은 인천시 중구 신흥동에 살고 있던 안두희를 찾아갔습니다. 그의 손에는 '정의봉'이라고 새겨진 약 40cm 크기의 몽둥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이 몽둥이로 안두희를 처단한 후,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는 안두희는 살려둬 봤자 더 이상 입을 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대로 살려뒀다가 자연사 하면 우리의 민족 정기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리고 후일 후손들에게 뭐라고 말할 것이며 나중에 백범 선생을 어찌 뵐 수 있겠습니까? 저는 청소부 심정으로 그를 처단했습니다."

국민적 지지와 구명운동

박기서 선생이 2018년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정의봉을 기증하는 모습

박기서 선생의 행동은 많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가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각계의 구명운동이 이어졌고, '백범 암살범 안두희 처단 박기서 의사 석방대책위원회'가 꾸려져 9,200명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한겨레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박기서 선생은 항소심에서 3년형으로 감경되었고, 1998년 3·1절 대사면 때 사면 대상자에 포함되어 복역 1년 5개월만에 출소했습니다.

역사의 증인으로서의 삶

출소 후 박기서 선생은 택시운전 등으로 생업을 이어가며 조용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역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역사 왜곡 움직임에 꾸준히 비판 목소리를 냈고, 2018년에는 안두희를 처단할 때 사용했던 '정의봉'을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하여 역사 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

박기서 선생의 친필 유묵에는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준다"는 뜻으로, 그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이었습니다.

그는 개인적 이익보다 민족의 정의를, 자신의 안위보다 역사의 진실을 택했습니다. 4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법적 처벌 없이 살아온 안두희에게 민족사적 심판을 내림으로써, 정의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영원히 기억될 의인

박기서 선생은 단순히 복수를 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정의를 실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했습니다.

2025년 7월 10일 새벽 0시 10분, 경기도 부천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박기서 선생. 그의 부인 원미자 씨와 자녀들이 남겨진 가족입니다. 빈소는 부천장례식장에 마련되었고, 12일 오전 5시 발인하여 남양주 모란공원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천성이 비단결처럼 고우신 박기서 선생님! 하늘나라 백범의 품에서 부디 영면하옵소서."

박기서 선생의 삶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역사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불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의 삶과 죽음이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주길 바라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 쓰기

0 댓글

신고하기

이 블로그 검색

이미지alt태그 입력